만나봅시다| 강창백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대전지역 탈북민자문위원회 위원장
대한법률신문사 | 입력 : 2026/07/14 [19:51]
누군가는 은퇴와 함께 인생의 막을 내린다. 그러나 강창백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대전지역 탈북민자문위원회 위원장의 삶은 정년퇴직 이후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공직에서 35년을 봉직한 뒤에도 그는 평화통일 교육과 탈북민 지원, 국가유공자 봉사, 어르신 교육 등 지역사회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며 또 다른 봉사의 길을 걷고 있다.평생을 나라와 이웃을 위해… 강창백 위원장이 걸어온 봉사의 길전쟁의 아픔을 딛고 공직과 지역사회 봉사, 평화통일 실천으로 이어온 삶 그의 삶을 돌아보면 한 개인의 성공담이라기보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굴곡을 함께 지나온 한 시민의 기록에 가깝다. 강 위원장은 6·25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았던 충남 안면도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 피란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전쟁이 남긴 아픔을 몸소 경험했고,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서로 돕고 나누는 공동체 정신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훗날 그가 평화통일과 봉사의 가치를 평생의 소명으로 삼게 된 배경에도 이러한 성장 과정이 자리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을 이어가기 쉽지 않았던 청년 시절, 그는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대한민국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이후 월남전에 참전하며 전쟁의 참혹함과 자유의 소중함을 직접 체험했다. 전쟁은 그에게 평화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이 따르는지를 일깨워 준 삶의 전환점이었다. 귀국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새마을운동과 지역사회 발전에 앞장섰다. 청년회장과 이장으로 활동하며 농촌 환경 개선과 주민 화합을 이끌었고, 문맹 퇴치를 위한 야학을 운영하는 등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헌신했다. 주민들이 함께 잘사는 마을을 만들겠다는 그의 신념은 마을길 확장과 주거환경 개선, 농가 소득 증대 등 다양한 성과로 이어졌으며 지역사회의 신뢰를 얻었다. 1978년부터는 예비군 중대장을 시작으로 국방 분야에서 오랜 공직생활을 이어갔다. 이후 충남과 대전을 관할하는 향토사단에서 예비군 조직과 교육훈련을 담당하며 지역 방위태세 확립에 힘썼다. 특히 예비군 교육의 참여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실효성 있는 교육체계를 구축해 여러 차례 우수부대와 최우수부대로 선정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는 조직 관리뿐 아니라 `내 고장은 내가 지킨다'는 공동체 의식을 확산시키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공직생활 동안에도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검정고시를 거쳐 방송통신대학교에 진학했고, 꾸준한 학업 끝에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대학 강단에 서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고, 한국인재능력개발원협동조합 이사장과 대각불교 교양대학 부학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육과 인재 육성에 기여했다. 배움은 자신의 삶을 바꾸는 힘이라는 믿음이 그의 삶을 이끌어온 또 하나의 원동력이었다. 2017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이후 그의 봉사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지역 주민들에게 평화통일의 필요성을 알리고 통일 공감대를 넓히기 위한 토론회와 교육에 적극 참여했으며, 탈북민들이 지역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상담과 지원 활동을 이어왔다. 통일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국민의 공감과 이해에서 시작된다는 신념 아래, 그는 평화통일 교육을 생활 속 실천으로 이어가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국가유공자들을 위한 봉사 역시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대전보훈병원을 찾아 입원 중인 국가유공자들을 대상으로 심리상담과 교육, 위문 활동을 지속하며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해왔다. 또한 어르신들의 디지털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스마트경로당 운영 모델을 제안하고 영상 콘텐츠를 활용한 교육을 추진하는 등 시대 변화에 맞춘 새로운 복지 모델 확산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의 봉사는 특정 분야에만 머물지 않았다. 어려운 이웃의 장례를 직접 챙기고 생활이 어려운 주민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등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언제든 가장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그의 삶의 방식이었다. 봉사는 특별한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가까운 이웃을 돌아보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그의 변함없는 신념이다. 강 위원장은 평생을 살아오며 수많은 포상과 표창을 받았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큰 보람은 상장이 아니라 사람이다. 함께 웃고, 함께 어려움을 이겨낸 이웃들의 삶이야말로 자신에게 가장 값진 훈장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금도 평화통일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준비해야 할 현재의 과제라고 강조한다.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 지역사회 속에서 통일 공감대를 넓혀가는 일 역시 앞으로 자신이 계속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믿고 있다. 35년의 공직생활과 수십 년에 걸친 지역사회 봉사,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는 평화통일 실천 활동. 강창백 위원장의 삶은 화려한 성공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국가를 위해, 지역사회를 위해, 그리고 사람을 위해 묵묵히 걸어온 한 사람의 책임과 헌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발걸음은 오늘도 평화와 나눔이라는 이름으로 계속되고 있다. 김창기 대기자 그의 삶을 돌아보면 한 개인의 성공담이라기보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굴곡을 함께 지나온 한 시민의 기록에 가깝다. 강 위원장은 6·25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았던 충남 안면도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 피란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전쟁이 남긴 아픔을 몸소 경험했고,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서로 돕고 나누는 공동체 정신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훗날 그가 평화통일과 봉사의 가치를 평생의 소명으로 삼게 된 배경에도 이러한 성장 과정이 자리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을 이어가기 쉽지 않았던 청년 시절, 그는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대한민국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이후 월남전에 참전하며 전쟁의 참혹함과 자유의 소중함을 직접 체험했다. 전쟁은 그에게 평화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이 따르는지를 일깨워 준 삶의 전환점이었다. 귀국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새마을운동과 지역사회 발전에 앞장섰다. 청년회장과 이장으로 활동하며 농촌 환경 개선과 주민 화합을 이끌었고, 문맹 퇴치를 위한 야학을 운영하는 등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헌신했다. 주민들이 함께 잘사는 마을을 만들겠다는 그의 신념은 마을길 확장과 주거환경 개선, 농가 소득 증대 등 다양한 성과로 이어졌으며 지역사회의 신뢰를 얻었다. 1978년부터는 예비군 중대장을 시작으로 국방 분야에서 오랜 공직생활을 이어갔다. 이후 충남과 대전을 관할하는 향토사단에서 예비군 조직과 교육훈련을 담당하며 지역 방위태세 확립에 힘썼다. 특히 예비군 교육의 참여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실효성 있는 교육체계를 구축해 여러 차례 우수부대와 최우수부대로 선정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는 조직 관리뿐 아니라 `내 고장은 내가 지킨다'는 공동체 의식을 확산시키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공직생활 동안에도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검정고시를 거쳐 방송통신대학교에 진학했고, 꾸준한 학업 끝에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대학 강단에 서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고, 한국인재능력개발원협동조합 이사장과 대각불교 교양대학 부학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육과 인재 육성에 기여했다. 배움은 자신의 삶을 바꾸는 힘이라는 믿음이 그의 삶을 이끌어온 또 하나의 원동력이었다. 2017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이후 그의 봉사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지역 주민들에게 평화통일의 필요성을 알리고 통일 공감대를 넓히기 위한 토론회와 교육에 적극 참여했으며, 탈북민들이 지역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상담과 지원 활동을 이어왔다. 통일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국민의 공감과 이해에서 시작된다는 신념 아래, 그는 평화통일 교육을 생활 속 실천으로 이어가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국가유공자들을 위한 봉사 역시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대전보훈병원을 찾아 입원 중인 국가유공자들을 대상으로 심리상담과 교육, 위문 활동을 지속하며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해왔다. 또한 어르신들의 디지털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스마트경로당 운영 모델을 제안하고 영상 콘텐츠를 활용한 교육을 추진하는 등 시대 변화에 맞춘 새로운 복지 모델 확산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의 봉사는 특정 분야에만 머물지 않았다. 어려운 이웃의 장례를 직접 챙기고 생활이 어려운 주민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등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언제든 가장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그의 삶의 방식이었다. 봉사는 특별한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가까운 이웃을 돌아보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그의 변함없는 신념이다. 강 위원장은 평생을 살아오며 수많은 포상과 표창을 받았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큰 보람은 상장이 아니라 사람이다. 함께 웃고, 함께 어려움을 이겨낸 이웃들의 삶이야말로 자신에게 가장 값진 훈장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금도 평화통일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준비해야 할 현재의 과제라고 강조한다.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 지역사회 속에서 통일 공감대를 넓혀가는 일 역시 앞으로 자신이 계속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믿고 있다. 35년의 공직생활과 수십 년에 걸친 지역사회 봉사,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는 평화통일 실천 활동. 강창백 위원장의 삶은 화려한 성공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국가를 위해, 지역사회를 위해, 그리고 사람을 위해 묵묵히 걸어온 한 사람의 책임과 헌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발걸음은 오늘도 평화와 나눔이라는 이름으로 계속되고 있다. 김창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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